*이 글에 언급된 일반적인 군대 이야기는, 모두 스포일러일 가능성이 높으니 알아서 피하시고.



감독이 거짓 시나리오를 작성해 육군의 촬영협조를 받아냈다는 도의적 문제와,
고작(!) 4000만원밖에 들이지 않은 영화학과 학생의 졸업작품이라는 태생적 한계.
글쎄. 일단 그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고개를 저은 다음 영화를 보자.

병장과 이등병.
군생활에 있어서, 어쩌면 하사와 국방부장관 사이의 간격을 넘어서는 유일한 이름들.
(ex. 중대장님, 오마웁병장님이 전투화 다 닦아놓으셨답니다. -04.9월, 모이등병이 중대장에게)
친구라는 수평적 관계와 완벽히 대척점에 서 있는 군대의 계급이란 수직적인 관계는
밖에서는 쉽게 느끼는 얄팍한 감정조차도 꼬아버린다.

절대적인 상명하달체계와 철저히 단계를 거치는 보고체계.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이것들 덕분에 생기는 숱한 오해. 곡해.
(이등병이 병장에게 말을 거는것은 무개념이며, 병장이 이등병 갈구는것은 웃기는 짓이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했다.

A급 전투화를 바치던 승영의 모습에서
군생활 좀 편해보려 기꺼이 훈련계획표를 고치던 나를 보았고.
좋은게 좋은거라며 친구를 향해 군대의 타성을 주입시키던 태정의 모습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며 부사수를 향해 윽박지르던 나를 보았으며.
계급이 올라갈수록 자신을 향한 승영의 눈빛이 달라지는걸 알았을 법도 한 지훈의 모습에서
'족'같은 고참만나 '존'나게 고생했을, 후임들의 눈빛을 보았다.

비록 아직 1년도 안된 기억이지만,
인간은 불편한 기억들을 자연스럽게 잊어버린다고 한다.
나역시 의도하지않게 많은 그것들을 잊어버렸고,
그저 떠올리기 싫은 추억 정도로만 머릿속에 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잊을것은 잊되.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처음 느꼈던 불합리. 부조리. 타성에 젖기전 가졌던 처음의 마음들.
과연 지금은 그 마음의 1/10이라도 비슷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절망적일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나는 아직도 머리에,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처음 들은 욕설들. 처음 맞은 주먹과 군화의 느낌. 눈 속에서 머리박는 상쾌함.
처음 멘 완전군장의 무게. 내가 모질게 대했던 아이들. 뱉은 욕설들.
일신의 안위를 위해 마음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한척 했던 사람들.
절대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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