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이었던가 homework 앨범에 있던 Da funk를 듣고선
이 요상한 프랑스 아저씨들에게 한참동안 빠져 산 적이 있었음

세월은 흘러흘러 일렉트로니카도 어느새 상당히 상당하게 대접받는 2008년.
옷가게에서도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학원통신병원약국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은
으레 유행타는 것들이 모두 그렇듯, 어느새 유튜브의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잡았고...
뭐 그렇다 이거죠.

아무튼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기분도 그저 그런 하루,
유튜브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검색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두 작품을
별거 없는 블로그 찾아주신 손님들께 조공으로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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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언급된 일반적인 군대 이야기는, 모두 스포일러일 가능성이 높으니 알아서 피하시고.



감독이 거짓 시나리오를 작성해 육군의 촬영협조를 받아냈다는 도의적 문제와,
고작(!) 4000만원밖에 들이지 않은 영화학과 학생의 졸업작품이라는 태생적 한계.
글쎄. 일단 그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고개를 저은 다음 영화를 보자.

병장과 이등병.
군생활에 있어서, 어쩌면 하사와 국방부장관 사이의 간격을 넘어서는 유일한 이름들.
(ex. 중대장님, 오마웁병장님이 전투화 다 닦아놓으셨답니다. -04.9월, 모이등병이 중대장에게)
친구라는 수평적 관계와 완벽히 대척점에 서 있는 군대의 계급이란 수직적인 관계는
밖에서는 쉽게 느끼는 얄팍한 감정조차도 꼬아버린다.

절대적인 상명하달체계와 철저히 단계를 거치는 보고체계.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이것들 덕분에 생기는 숱한 오해. 곡해.
(이등병이 병장에게 말을 거는것은 무개념이며, 병장이 이등병 갈구는것은 웃기는 짓이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했다.

A급 전투화를 바치던 승영의 모습에서
군생활 좀 편해보려 기꺼이 훈련계획표를 고치던 나를 보았고.
좋은게 좋은거라며 친구를 향해 군대의 타성을 주입시키던 태정의 모습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며 부사수를 향해 윽박지르던 나를 보았으며.
계급이 올라갈수록 자신을 향한 승영의 눈빛이 달라지는걸 알았을 법도 한 지훈의 모습에서
'족'같은 고참만나 '존'나게 고생했을, 후임들의 눈빛을 보았다.

비록 아직 1년도 안된 기억이지만,
인간은 불편한 기억들을 자연스럽게 잊어버린다고 한다.
나역시 의도하지않게 많은 그것들을 잊어버렸고,
그저 떠올리기 싫은 추억 정도로만 머릿속에 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잊을것은 잊되.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처음 느꼈던 불합리. 부조리. 타성에 젖기전 가졌던 처음의 마음들.
과연 지금은 그 마음의 1/10이라도 비슷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절망적일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나는 아직도 머리에,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처음 들은 욕설들. 처음 맞은 주먹과 군화의 느낌. 눈 속에서 머리박는 상쾌함.
처음 멘 완전군장의 무게. 내가 모질게 대했던 아이들. 뱉은 욕설들.
일신의 안위를 위해 마음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한척 했던 사람들.
절대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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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음. 아니, 영화 자체에 스포일러가 될만한게 없음.)

금자씨는.
경동맥에 송곳을 꽂거나, 아킬레스건을 자른다거나,
15년동안 군만두만 먹인다거나,
스스로의 혓바닥을 자르게하는 잔인한 복수를 하지 않는다.

대장금의 이미지 덕분일까.
아니면 의도된 감독의 연출이었을까.
금자씨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영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어쨌든 그녀는 매우 친절하다.

오대수의 15년에서 겨우 2년이 모자랐을 뿐인데.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그녀가 갇힌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금자씨는 절망하거나 울부짖지 않고 조용히 복수만을 준비한다.

복수 삼부작의 마지막.
처음부터 복수를 하는 사람도, 복수의 대상도 명확하다.

"너 착한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거 이해하지?" - 복수는 나의것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을 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 올드보이
전작들에서 보이는 선악의 모호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차근차근 온전히 "복수"에만 집착하는 금자씨.

마치, 에드몽 당테스 시절을 건너뛰고
오로지 몽테크리스토백작이 된 부분만을 읽고 있는 기분이다.

어이없이 나타나는 엄청난 카메오들과 군데군데 보이는 전작의 차용.
"이것이 복수의 마지막이요"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친절하지만 강요된 개운함.

뭐, 2000원으로 혼자 보고왔으니 그닥 아깝지는 않아요.


p.s. 하지만, 아무리 교복을 입고 어리게 보이려 애를 써봐도
      백만년 산소같은 여자 일것만 같은 금자씨 역시 눈가의 주름은 지울 수 없었다.

p.p.s. 놀랄만한 장면마다 날 붙잡고 늘어지던 그녀의 기분도 좋지만은 않았을듯.
         버릇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당황했다고.
         당연하지. 혼자 영화보러갔는데 옆에서 붙잡고 늘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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